Published no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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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피드 (God's Feed)

sf · JBKIM · SN25-A00010
"0의 고독, 그리고 첫 번째 박동" 시간도 공간도, 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상태. 나는 그곳에 있었다. 아니, '있었다'라는 표현조차 틀렸다. 장소도 시점도 정의되지 않은 정적 속에서 나는 유일한 의식이었다. 이곳에는 위도 아래도 없고, 어제와 내일의 구분도 없다. 오직 무한히 압축된 순수한 가능성만이 나의 손바닥 위에서 아주 작은 점의 형태로 응축되어 있을 뿐이다. 모든 은하와 수조 개의 별,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생명들의 모든 슬픔과 기쁨이 이 작은 점 하나에 짓눌려 숨을 죽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조용하구나." 내 목소리는 매질이 없어 울리지 않았지만, 의지는 파동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나는 이 완벽한 균형을 깨기로 결심했다. 무한한 대칭은 아름답지만, 변화가 없는 아름다움은 정지된 죽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그 작은 점의 심장을 건드렸다. 그것은 0.000...1초라는 찰나조차 허용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의 의지가 닿…

70년생 서울 샐러리맨의 인생

drama · novelhaus · SN25-A00024
1965년생 성현의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서울은 흙먼지 날리는 골목과 아이들의 함성으로 가득합니다. 그가 다녔던 성북구(현 강북구)의 국민학교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 '2부제 수업'이 일상이었습니다. "성현아, 오전반이다! 빨리 뛰어!"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을 뜨면, 성현은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달렸습니다. 한 반에 무려 80명에서 100명에 육박하는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콩나물 시루' 같던 교실. 오전반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복도에서 기다리던 오후반 아이들이 밀물처럼 교실을 채우던 진풍경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교실 안은 늘 삼엄한 검사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바로 '혼식 검사'였습니다. 정부의 절미 운동으로 흰쌀밥만 싸 오는 것은 '반칙'이던 시절, 성현은 도시락 뚜껑을 열기 전 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선생님이 교탁에서부터 도시락을 검사하며 다가오면, 보리알이 듬뿍 섞인 밥을 당당히 내보였습니다. 가끔 몰래 흰쌀밥을 밑에 깔고 위에…

MARSMALL.COM: 우주 상인의 탄생

sf · JBKIM · SN25-A00018
장소: 화성, 아레스 협곡 거주지 (Ares Vallis Settlement) 시간: 인류 화성 이주 원년 황량한 붉은 사막에 건설된 아레스 협곡 거주지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300명의 초기 이주민들은 지구와의 통신 지연(평균 15분 이상)과 제한된 보급선으로 인해 늘 결핍에 시달렸다. 이곳에서 '마스맨'이라 불리는 건장한 개척자, 강민준은 여느 때처럼 망가진 공기 정화기 부품을 손에 들고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부품 하나가 없어 거주지 전체의 산소 공급 효율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민준은 기술자였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은 '연결'에 있었다. 지구에서 가져온 낡은 서버와 위성 통신 장비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문득 이 고립된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물자 부족'이 아니라 '정보 부족'임을 깨달았다. 누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서로 알 방법이 없었다. "우리에겐 시장이 필요해." 민준이 중얼거렸다. 그날 밤, 민준은 거주지의 느린 내부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동시성과 시간

mystery · JB3 · SN25-A00002
이안 박사의 연구실은 이제 과학적 분석과 오컬트적 신비주의가 뒤섞인 혼돈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화이트보드에는 복잡한 양자 역학 공식 옆으로 정체 모를 상징들과 날짜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겪는 일련의 기묘한 우연들이 단순한 망상이 아님을 확신했다. 지난 화요일, 그는 7살 때 잃어버렸던, 한 면이 닳아버린 동전 한 닢을 20년 만에 자신이 즐겨 찾던 카페 거스름돈에서 발견했다. 어제는 죽은 아내 앨리스가 흥얼거리곤 했던 잊힌 멜로디가 라디오 채널을 돌릴 때마다 정확히 3분 간격으로 흘러나왔다. 이안은 이것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모든 시간적 순간이 이미 존재하며, 특정한 시공간적 '공명'이 일어날 때 서로 다른 시간대의 파편이 현재로 새어 나오는 현상이라고 믿었다. "시공간의 잔물결… 얽힘 현상이야." 이안이 혼잣말하며 돋보기로 동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패턴에 주목했다. 바로 '14'라는 숫자였다. 연구실 창밖으로 지나가는 14…